저는 은둔을 그저 '의지 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 여겼죠. 그런데 5년이라는 시간을 방 안에서 버텨낸 사람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나서, 그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은둔은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였습니다.

사회적 고립,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구조의 문제
은둔형 외톨이, 흔히 일본어로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라고 부르는 상태를 두고 "결국 본인이 나오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아직도 적지 않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방 안에서 소변을 해결하고, 씻지 않은 채로 지내고, 쉰내가 나는 공간에서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감각이 누적되면서 몸이 먼저 멈춰버린 겁니다. 저는 이걸 처음 들었을 때 무척 생소한 사실이었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 몸과 마음이 내린 일종의 긴급 정지였던 셈이죠.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이란, 개인이 타인 및 공동체와의 의미 있는 연결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결의 부재'가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니라 환경과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취업 경쟁, 한 번 삐끗하면 영원히 뒤처질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 청년들을 조금씩 방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WH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더 빈번하게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WHO).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공중 보건(Public Health)의 영역입니다. 공중 보건이란 개인의 질병이 아닌,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을 관리하는 개념으로, 만성적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건강 위해를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가 이 논의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은둔의 스펙트럼도 제각각입니다. 어린 시절 따돌림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사회성을 배우지 못한 경우, 꿈꾸던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해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경우, 그리고 별다른 큰 사건 없이 그냥 막막함이 쌓여 문을 닫아버린 경우까지. 이처럼 은둔의 원인은 하나가 아닙니다.
-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구조가 은둔의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 은둔형외톨이(히키코모리) 상태는 의지 부족이 아닌 환경적 누적의 결과입니다
- WHO는 청년 세대의 외로움을 공중 보건 문제로 공식 경고하고 있습니다
- 은둔의 원인은 개인마다 달라 획일적 해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연결감 회복, 취업보다 먼저 필요한 것
"빨리 밖에 나가라"는 말이 은둔 청년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지, 저는 솔직히 이전까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갈 곳이 없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취업을 독려하기 전에 '연결감(Sense of Belonging)'을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저는 깊이 동의합니다. 연결감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 즉 소속감과 유대의 감각을 말합니다. 이것이 결여된 상태에서 사회로 나가라는 요구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2018년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정책으로 다룬 나라입니다. 외로움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설립하고, 슬로건을 '연결된 사회'로 내걸었습니다. 특히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라는 방식이 주목받았는데, 여기서 사회적 처방이란 의사가 약을 처방하는 대신 지역 공동체 활동이나 모임 참여를 처방하는 방식입니다. 동네 주치의(General Practitioner, GP)가 외로움이나 사회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를 지역 사회 자원과 연결해 주는 것이죠(출처: 영국 정부 외로움 연간 보고서).
일본은 30년 넘게 히키코모리 문제와 씨름해 왔습니다. 이미 '8050 문제'라는 단어가 생겼는데, 80대 부모의 연금으로 50대 은둔 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 하나가 은둔이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장기적 과제임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가족 모임이 전국적으로 자리 잡았고,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자립 지원 식당처럼 실질적인 사회 복귀 경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저는 직접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셰어하우스처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주거 형태가 초기 연결감 회복에 꽤 효과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침마다 기분 점수와 신체 점수를 서로 공유하는 작은 모임,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이런 구조 자체가 치료적 기능을 합니다. 사회공포증(Social Phobia), 즉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상태는 새로운 관계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완화됩니다. 한 번의 강의나 프로그램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상 회사 방식도 제 경험상 흥미로운 접근이었습니다. 8주 과정으로 운영되는 광고 마케팅 가상 회사에서 실제 근무 시간과 동일하게 일하며 발표를 준비하고, 어르신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청년들은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되찾아갑니다. 이건 취업 훈련이 아니라 존재감의 회복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은둔형외톨이와 히키코모리는 같은 말인가요?
A.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용어로, 사회적 관계와 외부 활동을 6개월 이상 거의 완전히 차단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한국에서는 '은둔형외톨이' 또는 '고립 청년'으로 부르며, 개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문화적 맥락과 지원 체계는 나라마다 다르게 발전해왔습니다.
Q. 은둔 청년을 가족이 어떻게 도울 수 있나요?
A. "빨리 나와라"는 압박보다 먼저 필요한 건 판단 없이 곁에 있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가족 모임처럼, 가족 스스로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지지를 받는 것이 장기전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Q. 은둔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취업부터 해야 하나요?
A. 취업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 일상 회복 없이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씻고, 잠을 자고, 누군가와 짧게 대화를 나누는 아주 작은 루틴이 먼저입니다. 연결감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 사회 이행을 위한 일 경험을 시도하는 순서가 더 효과적이라는 현장 경험이 많습니다.
Q. 사회적 처방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A.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란 의료적 치료 대신 또는 병행하여, 지역 공동체 활동·모임·자원봉사 등 사회적 연결을 '처방'하는 방식입니다. 영국에서 동네 주치의(GP)가 외로움이나 고립 문제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지역 자원과의 연결을 연결해주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단순한 상담을 넘어 실질적인 관계와 활동으로 이어준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 방식과 차별됩니다.
결론
저는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사회가 속도와 경쟁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사회의 규격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고 늘려버리는 방식으로는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은둔 청년 문제에 '빨리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구조'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을 공중 보건 문제로 인식하고, 연결감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회복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툴고 흔들리더라도, 천천히 다시 연결되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