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천만 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요즘 장 볼 때마다 느낍니다.

칸티용 효과: 돈이 풀릴 때 왜 나만 가난해지는가
월급이 올랐는데 왜 생활은 더 팍팍해지는 걸까요. 저도 한동안 이 질문에 답을 못 했습니다. 그러다 칸티용 효과(Cantillon Effect)라는 개념을 알게 됐고, 뭔가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칸티용 효과란 시중에 풀린 돈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먼저 흘러들어 가고, 마지막으로 월급쟁이에게 닿는다는 이론입니다. 18세기 경제학자 리처드 캉티용이 처음 설명한 개념인데, 300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게 소름 돋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30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30억 현금을 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지금은 같은 자산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돈을 풀기 시작하면, 그 돈은 가장 먼저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실물 자산 시장으로 흘러갑니다. 아파트 가격은 40억, 50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 돈이 시중 물가를 올리고, 결국 근로자의 월급에 일부가 반영됩니다. 월급도 조금 올랐으니 뭔가 나아진 것 같은데, 막상 나와보면 아파트는 이미 훨씬 비싸져 있고 마트 영수증은 예전보다 훨씬 두꺼워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게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매달 체감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든 화폐의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실제 상품의 양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구매력(Purchasing Power)이란 동일한 금액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실질적인 양을 뜻합니다. 숫자로 표시된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으로 실제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냐는 것이 진짜 부의 척도입니다. 저축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배웠던 지난날이 원망스러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칸티용 효과가 잔인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돈이 풀려도 자산 보유자에게 먼저 닿기 때문에 자산 가격이 먼저 오른다
- 물가가 올라 월급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진 뒤에야 근로자 소득이 소폭 인상된다
- 결과적으로 자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진다
- 이 과정은 정부가 돈을 풀 때마다 반복되어 복리처럼 자산 격차를 누적시킨다
인플레이션과 고환율이 겹칠 때, 서민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자체도 무서운데, 고환율까지 겹치면 그 충격이 배가 된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곡물, 반도체 원자재 등 거의 모든 핵심 자원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환율이 오르면 이 모든 것의 수입 단가가 동시에 올라가고,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 물가에 전가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고환율이 장기간 지속되는 지금,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집계되었지만, 식품과 외식 물가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은행). 통계 숫자보다 실제 장바구니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가 훨씬 크다는 걸 주변 분들도 다 공감하실 겁니다.
더 충격적인 건 자영업 폐업 수치였습니다. 2024년 기준 폐업한 자영업자 수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제 동네만 봐도 6개월 전에 있던 카페가 사라졌고, 골목 치킨집이 또 바뀌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경쟁에서 진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통화팽창(Monetary Expansion)이란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시중에 공급하는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고 월급도 소폭 따라 오르면, 소득 구간이 올라가면서 내야 할 세금도 함께 늘어납니다. 국민이 동의한 적도 없고 고지서를 받지도 않았지만, 지갑에서 보이지 않게 세금이 빠져나가는 구조입니다. 코로나 시기 미국의 M2 통화량이 단기간에 40%나 급증했다는 사실은, 이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건 단순한 재테크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결국 화폐 가치 하락의 시대에 현금만 쥐고 있는 건 제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뒤로 걷는 것과 같습니다.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돈이 흐르는 구조 자체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직접 겪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지금 당장 큰 자산을 살 수 없더라도, 화폐 구매력이 하락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인식이 있어야 다음 선택이 달라집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